가수 문주란이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리즈시절 이효리 닮은 꼴..나이 71세. 유재석‧유희열에 “자존심 충고”(슈가맨3) 프로필 동숙의노래 고향 신신애

문주란, 아픈 가정사 공개 ‘아버지는 한량, 세 번이나 결혼…원망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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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 문주란 “여자로 인생 실패…시집 못 가봤고, 아이도 못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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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문주란이 화제입니다.​24일 밤 방송된 JTBC 예능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 3’에는 가수 정승환과 선우정아가 게스트로 출연한 가운데 슈가맨으로 배우 신신애와 문주란이 소환됐습니다.​’슈가맨3′ 트로트 특집 신신애·문주란, 소환 성공..’유산슬’ 유재석팀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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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란은 어린나이에 데뷔해 많은 히트곡을 발표하고, 이후 영화배우까지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 이후 오랜동안 활동을 쉬었다가 1990년에 다시 트로트로 재기를 한 바 있습니다.

1949년 생으로 올해 나이 72세의 문주란은 히트곡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하네’를 부른 뒤 “요즘은 저런 가사같이 하면 큰일난다. 유부남들은 아내에게 ‘죽었습니다’ 해야 한다. 자존심도 없어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충고하며 입담을 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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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방송에서 MC 헤이즈는 문주란에게 “선배님의 과거와 이효리 선배님이 닮았다는 얘기가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공개된 사진에는 문주란의 시절이 담겨있었고 이효리의 옆모습과 많이 닮은 모습이라 놀라움을 자아냈다. 특히 유재석은 “정말 느낌이 있다. 비슷하다”고 말해 관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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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생인 문주란은 출신으로 올해 71세다. 그는 1966년 16세 나이로 ‘동숙의 노래’를 통해 데뷔했다. 이 밖에도 그는 ‘내 가슴속의 타인’ ‘그 시절 그 노래’ ‘둥근달’ 등 수많은 앨범을 발매하며 활발히 활동했다.신지원 한경닷컴 연예·이슈팀 기자​MC 유재석은 본격적인 슈가맨 소개에 앞서 요즘 가장 사랑받는 트로트 곡인 유산슬의 ‘사랑의 재개발’을 열창했다.

그의 물오른 가창력에 스튜디오가 순식간에 들썩거렸다. 이를 지켜보던 김이나는 “유재석씨가 유산슬씨와 컬래버레이션 했으면 좋겠다”고 능청스럽게 제안했다.이날 유재석 팀은 슈가맨에 대해 “활동 당시 충격적인 무대로 대한민국에 신드롬을 일으킨 분이다. 노래와 연기를 넘나드는 멀티형 슈가맨”이라고 힌트를 남겨 궁금증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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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슈가맨으로 신신애가 등장, 히트곡 ‘세상은 요지경’을 열창했다. 화려한 녹색 드레스에 왕관을 쓰고 여왕처럼 등장한 신신애는 여전히 주체할 수 없는 끼로 당시 춤과 노래를 그대로 재연했고, 이에 총 92불이 들어왔다. 신신애는 “이렇게 좋아해주시니까 ‘세상은 요지경’을 부른 보람이 있다”고 출연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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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을 묻는 질문에 신신애는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는 올 상반기에 개봉할 예정이다”며 적극적으로 출연한 영화를 홍보해 웃음을 안겼다. 또한 신신애는 제보자 배우 이동휘와의 인연에 대해 “영화 ‘극한직업’에 함께 출연한 인연이 있다. 영화가 너무 잘됐다. 나도 천만 배우가 됐다”면서 뿌듯해 했다.

신신애는 배우에서 가수에 도전하게 된 계기에 대해 “과거 드라마에서 트로트를 많이 불러야하는 ‘뽕짝네’ 역할을 맡았다. 당시 어머니가 소개해줬던 노래 ‘세상은 요지경’을 불렀다. 그때는 드라마에서 필요했기 때문에 노래를 불렀던 것 뿐인데 반응이 너무 좋았고, 결국 ‘세상은 요지경’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작사가로 참여 뿐만 아니라 직접 ‘이판사판 춤’을 만들기도 했던 신신애는 “제가 아이디어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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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적으로 만들었지만, 다이아몬드 스탭에 인도 춤도 들어가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신애는 즉석에서 유재석, 유희열에게 이판사판 춤을 알려주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유희열 팀 슈가맨은 제보자부터 눈길을 끌었다. 트로트계 절대 아이돌, 송가인이 직접 등장한 것. 송가인은 “트로트 계의 레전드 선배님이다. 나도 이 노래를 좋아해서 정말 많이 불렀다”고 직접 소환 기원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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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슈가맨으로 문주란이 등장, 히트곡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를 열창했다.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는 명절 스트레스 해소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곡. 문주란은 굵고 깊은 저음으로 등장부터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일반 성인 남자도 내기 힘든 풍부한 음역대를 내는 문주란의 목소리에 MC를 비롯한 모두가 푹 빠졌다.

이날 문주란은 이효리와 똑 닮은 과거 활동 모습도 공개해 ‘출구 없는 매력’을 뽐냈다. 또한 문주란은 묵직한 동굴 목소리로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를 열창해 감동을 자아냈다. 유희열과 유재석은 “목소리로 연기를 하신다. 오페라를 보는 것 같다”면서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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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노래 안부르고 싶다고, 이민 가고 싶다고 토로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문주란은 “더 목소리가 안나오기 전에, 올해는 곡을 만들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노래를 내고 싶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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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특집의 쇼맨으로는 선우정아와 정승환이 출연했다. 시즌 2에 이어 두 번째 맞대결을 하게 된 두 사람은 서로 필승을 다짐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선우정아는 일렉트로닉 버전의 2020 ‘세상은 요지경’을 열창, 정승환이 2020 ‘여자는 남자를 꿈꾸게 해’를 불렀다. 결과는 유재석-선우정아 팀의 승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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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한 문주란은 자신의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했다.​14세에 데뷔한 문주란은 어린 나이에도 깊은 감성을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이날 방송에서 “엄마를 일찍 여의었다는 환경에서 오는 외로움이라고 그럴까. 그게 없지 않았겠나 싶다. 안 그러면 애가 그렇게 표현을 잘 못 할 텐데. 새엄마 밑에서 자라고, 아버지가 세 번이나 장가를 가고 그러니까”라고 말했다.​이어 부모님의 결혼사진을 공개하며 “사진을 보면 ‘엄마’하고 부른다.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그럴 때는 ‘엄마’ 이렇게 부른다”고 털어놨다.

문주란은 또 아버지에 대해 “난 원망 같은 거 없다. 아버지가 너무 완고하셨고, 무서웠고, 그리고 한량이었다. 노래도 잘하고, 장구, 피리, 뭐 것도 잘 치고 그랬대. 근데 쉽게 말해서 작은 마누라도 많았고 그랬는데, 그때 엄마 속을 썩이지 말고 잘해주셨더라면 좋지 않았겠나”라며 ”나는 그 때를 모르지만 그랬으면 엄마가 오래 살았을 수도 있지 않겠나 싶고…”라고 고백했다.​가수 문주란과 후배 가수 조항조가 특별한 우정을 과시했다.​특히 이날 방송에는 조항조가 함께 해 문주란에 대한 존경심과 우정을 보였다.​이날 조항조는 “나는 이상한 여자”라고 자평하며 인생의 회한에 젖은 문주란에게 “누나의 인생은 노래다. 노래가 연인이고 친구다. 사람은 나이가 있어도 만날 수 있는 것”이라고 위로했다.

이에 문주란은 “조항조가 내 마음을 알아주니 좋다”며 고마워했고, 그에게 직접 만든 갈비찜을 대접했다. 조항조는 “주변에 (문주란에게 소개를 할) 좋은 분이 없느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내 주변에는 없다”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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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문주란은 “내 인생은 실패작이다. 시집도 못 가봤고 자식도 안 낳아봤다. 한 여성으로서의 인생은 실패작이라고 보지만 절대 후회한 적이 없다”며 “가수이기 때문에 이런 아픔이 있고 외로웠어야만 노래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 노래를 좋아하는 분이 있었다”고 가수로서의 사명감을 드러냈다.​또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남자들한테 환멸을 느꼈다고나 할까. 인간 문주란이 아닌 가수 문주란으로 다들 접근해 진실이 없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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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2월 16일 한 방송국 PD와의 실연을 이유로 수면제를 음독, 자살을 기도하여 중태에 빠졌었다.​1973년 10월 11일 방송 녹화를 마치고 나온 후, 자신의 조카와 함께 5명의 여인에게 약 40분간 납치 및 폭행을 당하였다.

문주란의 데뷔곡인 〈동숙의 노래〉의 가사 소재가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소개되기도 하였다​​1967년에는 군사영화 〈장렬509전차대〉에도 출연해, 처음으로 영화 배우로도 활동했고, 1967년과 1968년에는 MBC에서 주최한 MBC 10대 가수 가요제의 10대 가수에 선정되기도 하였다.​그러나 1969년 자살 미수와 관련된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났고, 은퇴를 선언했으나, 1970년 다시 컴백하여, 《문주란 독집》을 취입하였다​​​

 허윤하 기자  승인 201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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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하고도 4일. 북한강에 저무는 석양이 황금빛 이별을 고하듯 이곳 청평에서 인생을 노래한 지도 그리 되었다.​아쉽고 서운한 감정을 가슴에 담아 첫 발을 내디었던 그 무대, 그 자리에서 마지막이자 새로운 시작을 노래했다.허스키 보이스가 매력적인 가수 문주란씨가 자신의 이름을 건 ‘문주란뮤즈클럽’에서 처음 라이브 공연을 한 날은 1999년 11월 25일.

횟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공연을 했지만 그는 매번 무대에 오르기 전 떨리고 긴장되곤 한단다.”나는 노래 부를 때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예. 한 사람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습니꺼”​’공항의 이별’ ‘파란이별의 글씨’, 내하나의 사람은 가고’ 등 아련한 이별의 노래를 많이 불렀지만 그는 결코 자신의 음악을 사랑해주는 팬들에게 이별을 고한 적이 없다.15년을 이어온 라이브 공연을 접는 것도 이젠 본인이 직접 팬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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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묻더라고예. 그만두는 이유가 몸이 아파서 그러냐, 나이가 많아서냐 아님 은퇴를 하는 거냐고예. 저는 이제 15년이나 했으니까 접을 때가 됐다고 생각을 한거거든요. 전국투어도 하고 싶고.”​처음 뮤즈클럽을 열 때는 1년이나 버틸 수 있을지 사람들이 많이 걱정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매사에 급한 성격에 자존심까지 강하니 장사꾼으로서는 힘들어 보였을지도.​하지만 되려 꿋꿋하게 버텨 온 세월동안 참을성과 공연에 대한 내공은 차곡차곡 쌓였다.

내년 1월 17일 대구 아양 아트센터(오후 3시, 7시 공연)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데뷔 50주년 전국투어공연 일정은 울산, 진주, 마산, 창원, 강원도 지역까지 빡빡하게 잡혀있다.​그동안 격주로 펼쳐지는 예약공연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팬들을 위해 이번 달은 특별히 매주 공연 일정을 잡았다.마지막 공연이 펼쳐진 29일 밤 뮤즈클럽에는 문사모(문주란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을 비롯해 100여 명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여러분이 계셔서 문주란은 존재한다고 늘 생각해예. 기분좋은 마무리를 하는 날 인 것 같네예”그렇게 말문을 연 문씨는 인연이 깃든 지인들을 한 명 한 명 소개했다.​음악으로 맺어진 사이부터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반겨주는 팬까지.​그 마음에 보답하고자 첫 곡은 ‘보슬비 오는 거리’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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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말 한마디, 노래 한 자락 놓치지 않으려 핸드폰에, 두 눈에, 고이 모은 두 손에 소중히 담아갔다.​’공항의 이별’을 부를때면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가 시작될 땐 객석에서 떼창(한 무리가 같은 노래를 동시에 부름)이 흘러나왔다.

즉석에서 쏟아지는 신청곡 쪽지를 읽으며 팬들과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 받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곡인 ‘백치 아다다’에까지 이르렀다.​이날 문주란씨의 마지막 라이브 공연에는 특히 배우 선우용녀씨가 먼길을 마다않고 뮤즈클럽을 찾았다. 작곡가 남국인씨 부부도 모습을 보였다.​선우용녀씨는 무대에 올라 노사연씨의 ‘만남’을 열창하며 후배 문주란의 앞길을 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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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라이브 공연을 하면서 인생공부를 많이 했어요”일찍이 가요계에 데뷔해 연예인으로 살아오다 보니 뮤즈클럽을 열기 전에는 바깥세상을 잘 몰랐다고 한다.지금은 장사를 하면서 많이 세련됐다고 하지만 스트레스도 참 많이 받았다.​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손님들과 대화도 해야하고 뻐기는 손님을 상대해야 할 때도 있었다.”직설적이고 화끈하게 말하는 성격인데 다 참아야하니 스트레스가 마 팍 오더라고예.”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로서 화려하게만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은 않았구나.

되려 직접 탄 매실차를 건네며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온 몸에 고스란히 베어있었다.​14살에 데뷔해 두달 석달씩 전국을 돌며 극장쇼를 다니다보니 참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창살없는 감옥에 갇히다시피 했지예. 기악단 단장이 조그만 소녀였던 내를 담요에 둘둘 말아 재우면 그렇게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또 내려서 공연하고..어딜가나 만원사례 였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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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지금처럼 기획사가 아닌 레코드사에 소속되는 방식이었다. 그저 노래하는 게 좋고 박수받는 게 좋아서 돈이 적더라도 행복이 넘쳤던 시절이었다.​전략적으로 만들어진 아이돌이 풍년인 지금과는 참 많이 다르다.​음반시장의 불황으로 인해 보여주기 식으로 한껏 꾸민 가수들이 기획사의 지시에 따라 눈코뜰새 없이 행사 무대를 뛰어다닌다.

“선배가수로서 마음 속으로 측은할 때가 있습니더. 꼭두각시처럼 보이기도 하고예. 지(제) 선배 가수들이야말로 진짜 예술이었지예.”​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냈어도 오직 ‘노래’하나로 승부를 봤던 원로 가수들. 선배에 대한 아니 진정한 예술가에 대한 존경심이 담겨있다.​”지는 가난함 속에서 예술이 피어난다고 생각합니더. 마음으로 여유가 있고 행복하면 진실한 예술이 안 나오지예.” 당당하게 말을 이어가던 그가 가만히 손에 든 염주를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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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도, 성공도, 한 여자로서 꿈꿨던 사랑도 모두 내려놓은 가슴 한 편에 외로움이 켜켜이 쌓여갔다.”독신이라 고독한 건 사실이지만 얼마나 재치있게 외로움을 견뎌내는지가 중요합니더”​한 가족이라는 보금자리 아래, 형제도 자매도 새롭게 가정을 꾸려나가면 여자는 시댁에, 남자는 마누라와 자식 챙기기에 바빠 부모한텐 소홀해진다.

그런것처럼 각자 생활을 하다보면 다른 우선순위들에 가족 조차도 밀려나는 것이다.​”내 인생이 늘 즐겁지는 않아예. 울기도 하고. 성격이 강인하면서도 스스로 비판하고 자학할 때도 있지예. 그렇지만 그렇다고 누가 밥 먹여주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벌어 먹고 살아야 하니까”​유명세 때문에 어디가서 속시원히 털어놓지도 못하고, 달래줄만한 것도 없어 대신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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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이 떨어질때면 매일 백팔배 기도를 드리며 용기와 희망을 달라고 빌기도 한다.​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녀의 두 눈에 작은 유리구슬이 맺혔다.하지만 분명 반짝 빛이 났다. 외로움도 고난도 견뎌내는 그녀만의 힘.​그 점이 무대 위에서 발휘될 때 비로소 가수 문주란의 진면목이 나온다.

지난 2012년 설특집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서 남진의 ‘나야나’를 멋드러지게 불러 매니저, 청중평가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그때를 계기로 문주란에 대해 특히 젊은이들에게 알려진 것 같더라고예. 가수가 된 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더. 보람도 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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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아수라 백작 같다는 비방 댓글에도 되려 이런 목소리를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했다. 좀 더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말에도 그는 한사코 손을 내저었다.​지나친 노출은 적이 된다. 노래를 부르는 무대 위에서는 화려함으로 치장한 옷차림도, 코러스도 필요하지 않다.제일 중요한 것은 ‘노래’다. 이번 전국투어 콘서트에도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 바로 ‘음향’이다.

그래서인지 기악단, 공연기획팀과 논의할 때도 다른 곳에는 최대한 돈을 아끼고 대신 첼로와 바이올린 연주자를 더 추가하자고 제안했다.​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또다시 공연 무대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기 위해 후다닥 뛰어가는 그. 문주란.두 발을 움직이게 하는 건 ‘노래’에 대한 마음. 그것뿐이다.허윤하 기자​